"왜 게임만 사전검열?"…21만 게이머 사상 최대 헌법소원 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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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 이철우 변호사(왼쪽)와 유튜버 김성회씨가 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 이철우 변호사(왼쪽)와 유튜버 김성회씨가 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21만 721명의 게임 이용자와 제작자가 “게임 사전 검열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는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 이래 최대 규모의 헌법소원이다. 종전 기록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헌 확인 소송의 청구인 수(9만 5988명)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한국게임이용자협회는 8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범위한 게임 콘텐트에 대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 침해를 넘어 업계 종사자의 창작의 자유와 게임 이용자의 문화 향유권을 심각하게 제한한다”고 밝혔다.

협회가 문제 삼는 법은 게임산업법 32조 2항 3호다. 이 법은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해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게임의 유통을 금지한다”고 정한다. 게임업계에서 일명 ‘3223’이라고 불리는 법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게관위)는 지난 2022년 6월부터 게임플랫폼 스팀(Steam)에서 이 법을 근거로 월평균 17.3종의 성인용 게임을 차단했다.

이번 청구는 구독자 91만 5000명의 게임유튜브 채널 ‘김성회의 G식백과’ 운영자 김성회씨가 주도했다. 김씨는 지난달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임 사전검열 철폐’ 관련 영상을 올리고 청구인을 모았다.

청구인들은 게임이 다른 콘텐트와 비교해 과도한 규제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살인·마약·섹스 등 선정적인 소재를 활용하는 영화, 드라마, 만화 등과 비교해 게임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협회는 2017년 게관위에서 등급분류가 거부된 일본 추리 게임 ‘뉴단간론파 V3’ 논란을 예시로 들었다. 청구인 대표 김성회씨는 이날 “뉴단간론파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과 비슷한 내용과 수위의 콘텐트인데도 전체이용불가 판정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뉴단간론파는 독일 등 각국 게임등급 민간기구에서 15~16세 등급으로 분류된 게임이다. 그러나 당시 게관위의 한 심의위원은 “있어서는 안 될 쾌락살인, 사이코패스 게임”이라고 말하며 32조 2항 3호를 적용했다.

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인 이철우 변호사(오른쪽)와 유튜버 김성회(왼쪽)씨가 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 제출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영근 기자

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인 이철우 변호사(오른쪽)와 유튜버 김성회(왼쪽)씨가 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 제출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영근 기자

영화의 경우 22년 전 사전 검열을 폐지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2002년 ‘등급분류 보류제’를 폐지하는 대신 ‘제한상영가(制限上映可)’를 분류 기준에 추가하면서다. 제한상영가로 분류된 수위 높은 콘텐트는 일반 상영관에서 상영이 제한될 뿐 유통 자체가 금지되진 않는다. 영화진흥법 21조 4항의 등급분류 보류제가 “사실상 사전 검열에 해당하므로 위헌”이라는 2001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조치였다. 웹툰의 경우에도 한국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사전 검열 대신 사후 자율규제에 방점을 찍고 있다.

게임산업법 32조 2항 3호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헌법소원 청구인 대리인을 맡은 이철우 변호사는 이날 “모호한 조항 탓에 심의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빈번해 게임 제작자와 배급업자가 법을 예측하고 따르기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게임이 중독성이 심하기 때문에 다른 분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규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은 상호작용하는 콘텐트라서 영화 등 다른 콘텐트보다 우리 뇌를 훨씬 자극한다”며 “그로 인해 문제가 되는 일부 게임 이용자가 있기 때문에 다른 국가에서도 치료적 접근과 정책을 펼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회씨는 “이번 헌법소원으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게임을 아무 기준 없이 무분별하게 남용할 수 있게 되길 원하는 게 절대 아니다”라며 “그저 게임이 다른 콘텐트와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받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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